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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응형알렉산더 대왕은 전투에서 패배한 적이 없는 역사상 가장 강력한 지도자이자 전쟁 영웅으로 평가됩니다. 알렉산더 대왕의 원래 이름은 알렉산드로스 테르티우스 마그누스 (Alexander III Magnus)이며 마케도니아 왕국의 제26대 왕입니다. 그의 전쟁 영웅적 배경뿐만 아니라 플라톤의 제자인 아리스토텔레스의 제자로 유명합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고대 그리스의 가장 영향력 있는 학자로, 그리스 철학의 기초를 다룬 사람입니다.)
알렉산더 대왕의 생애
알렉산더 대왕은 고대 그리스의 마케도니아 왕국 출신으로, Makedon 왕자이자 대왕이었습니다. 알렉산더 대왕의 탄생에 대해서는 신화적인 이야기도 있습니다. 어머니 올림피아스는 필리포스 2세와 결혼한 날 천둥이 배를 관통하는 꿈을 꾸고, 필리포스 2세는 배에 사자의 그림이 그려진 아내를 구하는 꿈을 꾸었다고 합니다. 이는 알렉산더의 아버지가 제우스 신이라는 신성한 혈통을 만들기 위함으로 보입니다.
알렉산더 대왕이 13살이 되었을 때, 필리포스는 어린 시절 교사로 아리스토텔레스를 골랐습니다. 자신의 아들을 가르치는 대가로 아리스토텔레스의 고향인 스타게이라를 재건 시켜주었습니다. 전쟁의 기술을 배웠으며, 아리스토텔레스의 가르침을 받은 다른 친구들도 훗날 장군이 되었습니다. 3년간의 교육 뒤에 비잔틴 제국을 상대로 필리포스가 전쟁을 시작했습니다.
알렉산더는 20세에 아버지인 필리포스 2세가 암살당하자 왕위를 계승하여 마케도니아 왕이 되었습니다. 알렉산더 대왕은 왕권을 강화하기 위해 잠재적인 경쟁자들을 제거하기 시작했습니다. 아버지의 죽음으로 아테네, 테살리아 등 많은 도시들이 반란을 일으켰기 때문입니다. 그의 왕권 강화 통치는 그리스 본토의 통일과 동방의 정복으로 이어졌습니다.
알렉산더 대왕의 세계 정복
알렉산더 대왕은 그의 유명한 12년간의 정복 여정에서 헤라클레스의 이야기와 같은 영웅으로 기록되었습니다. 그는 그리스의 미키노스에서부터 인도의 푸르시아까지 거대한 영토를 정복했습니다. 그의 군대는 초월적인 군사 전략과 탁월한 지도력으로 유럽, 아시아, 아프리카의 거의 모든 대륙을 횡단하였습니다. 그의 정복은 그리스-동방 문화의 융합을 초래하였고, 이는 헬레니즘 문화의 시작이었습니다.
기원전 33년 약 4만명의 병력을 이끌고 페르시아 정복에 나섭니다. 페르시아 군과의 그라니코스 전투에서 승리한 후 아오니아 해안선을 따라 계속 전진하며 정복한 도시들에게 자치권을 주었습니다. 페르시아 정복에서 가장 중요한 전투 한 가지를 꼽자면 가이오메 (Gaugamela) 전투입니다. 이 전투는 알렉산더의 동방 정복의 중요한 전환점이었습니다. 알렉산더는 이 전투에서 대적하는 대군을 상대로 지혜롭고 가혹한 전략을 펼쳤습니다.
가이오메 전투는 기원전 331년 10월 1일에 현재의 이라크 영토에서 발생했습니다. 알렉산더 대왕은 대페르시아 왕이었던 다렉세스 3세와 대결하기 위해 그의 거대한 군대를 이끌고 이곳으로 이동했습니다. 다렉세스 3세는 페르시아 제국의 대왕으로서 그의 통치권을 지키기 위해 대규모 군대를 동원했습니다.알렉산더는 전투 준비를 하면서 적의 전술과 지형을 분석하고, 적의 약점을 파악하여 그를 공략하기 위한 전략을 세웠습니다. 그는 자신의 군대를 극도로 훈련시켰으며, 페르시아 군대와의 전투를 위해 최상의 준비를 마쳤습니다.
가이오메 전투 당일, 알렉산더는 적의 주력인 수많은 기병을 상대로 빠르고 공격적인 전략을 채택했습니다. 그는 자신의 중앙 부대를 약화시키고, 페르시아 군대의 중앙을 공격하면서 적의 집중력을 흩트렸습니다. 그 결과, 페르시아 군대는 혼란에 빠지고 붕괴하게 되었습니다.
알렉산더의 우수한 지휘와 군대의 뛰어난 훈련으로 인해 가이오메 전투에서는 알렉산더 대왕의 승리가 결정되었습니다. 이 전투 후, 다렉세스 3세는 패배를 인정하고 페르시아에서의 항복을 선언하였습니다. 이로써 알렉산더는 페르시아를 정복하고 동방의 대부분을 자신의 제국으로 통합하게 되었습니다.
가이오메 전투는 알렉산더 대왕의 전략적 천재성과 군사적 지혜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전투 중 하나로 평가되며, 그의 동방 정복의 중요한 챕터 중 하나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전투를 통해 알렉산더는 그의 제국을 크게 확장하고 역사상 불멸의 영웅으로 기록되었습니다.
알렉산더 대왕 : 마케도니아의 왕
알렉산더 대왕은 마케도니아의 왕으로서 그의 나라를 더욱 강력하게 만들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그는 왕권을 중앙집중화하고 군대를 개조하여 더욱 효율적인 전쟁을 치를 수 있었습니다. 또한 그는 왕실의 명성을 높이기 위해 건축과 문화 발전에도 많은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마케도니아는 알렉산더의 통치 아래서 크게 번영했으며, 그의 이러한 정책은 그의 후손들에게도 계승되었습니다.
기원전 323년 알렉산더 대왕은 31세에 바빌론에서 사망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의 사망에는 두가지 설이 있는데, 하나는 지병으로 인한 사망으로 알려져 있고, 다른 하나는 암살로 살해당하였다는 설입니다. 알렉산더 대왕의 무덤은 지금까지 찾지 못하고 있으며 유적 발굴을 위한 많은 탐사대들이 여전히 찾고 있습니다.
알렉산더 대왕의 죽음 이후에 후계자를 정하는 문제가 발생하면서 후손들 간의 투쟁이 벌어졌습니다. 유서가 발견되지 않았기 때문에, 각자 자신의 영토를 요구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결국 알렉산더가 이룩한 거대한 제국은 분열과 붕괴를 겪게 되었습니다.
알렉산더 대왕의 업적 : 헬레니즘
알락산더의 군사 정복으로 만들어진 거대한 제국 (약 520만 km2)은 동서양간의 문화 전파를 용이하게 만들어 동부의 많은 지역들이 그리스 문화의 영향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아시아에까지 마케도니아 문화가 전달되며 약 200-300년이 이어지는 이 문화 융합의 시대를 헬레니즘 문화라고 불립니다.
알렉산더 대왕은 본인의 이름을 딴 알렉산드리아 도시를 20개가량 만들었고 이러한 도시를 중심으로 그리스 문화가 전파되었습니다. 가장 큰 알렉산드리아는 이집트에 있으며 지중해 도시들 중 가장 번창할 수 있었습니다.헬레니즘 문화는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습니다.
- 다양성과 융합 : 헬레니즘 문화는 그리스, 이란, 이집트, 중앙아시아 등 다양한 지역의 문화 요소들이 융합되어 형성되었습니다. 그 결과로 그리스 문화와 동양 문화가 만나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 받았습니다.
- 도시 문화의 발전 : 헬레니즘 시대에는 다양한 도시국가들이 발전하였고, 이들 도시들은 과학, 철학, 문학, 예술 등의 분야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이들 도시는 문화적인 교류와 발전을 촉진하였습니다.
- 고대 그리스 문화의 계승 : 헬레니즘 문화는 고대 그리스 문화의 전통을 이어받았습니다. 그리스의 철학자들은 헬레니즘 시대에도 활약하여 신학, 도덕, 정치 등의 주제에 대한 철학을 연구했습니다.
- 동양 문화의 영향 : 알렉산더 대왕의 동방 정복으로 인해 그리스 문화는 이란, 이집트, 인도 등의 동양 문화와 접촉하였습니다. 이러한 접촉은 그리스 문화에 동양 요소들을 흡수하고 통합하는 과정을 이끌었습니다.
- 예술과 건축의 번영 : 헬레니즘 시대는 예술과 건축 분야에서도 번영하였습니다. 그리스와 동양 문화의 융합으로 다양한 예술 양식이 발전하였고, 건축물들은 웅장하고 화려한 스타일을 보였습니다.
알렉산더 대왕은 역사상 가장 위대한 정복자 중 하나로 기억되며, 그의 용맹하고 탁월한 전략은 세계를 영원히 바꾸었습니다. 그의 정복은 문화적 교류와 융합을 이끌어내어 헬레니즘 문화의 발전에 큰 기여를 하였고, 그 영향력은 오늘날까지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의 이야기는 영원한 전설로 남게 되었습니다.
반응형 - 다양성과 융합 : 헬레니즘 문화는 그리스, 이란, 이집트, 중앙아시아 등 다양한 지역의 문화 요소들이 융합되어 형성되었습니다. 그 결과로 그리스 문화와 동양 문화가 만나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 받았습니다.